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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알파벳을 학습하고 있는 유아

 

 

한국에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또래 학부모 네트워크 사이에 영어교육은 늘 이슈의 대상이 됩니다. 한 엄마가 내년에는 영어유치원을 보낸다고 하자 모든 관심이 주목됩니다. '다른 아이는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는데 우리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심리적 불안이 초등학교 입학 전, 일 년만큼은 수업료가 부담되더라도 보내볼까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한국에서 영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어 능력은 글로벌 성공을 위한 필수라고 여겨지지만, 현실은 빈곤층과 부유층의 극명한 정점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조기영어교육은 부유한 지역을 중심으로 급증했으며, 특히 영어 유치원은 사교육의 첫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수요를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인 한국의 조기영어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오늘은 이 세 가지 물음에 대해 답을 해 보겠습니다.

 

1. 한국에서 영어의 의미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외국어 그 이상의 권력을 의미합니다. '영어실력'을 중심으로 명문대학과 직업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고 빈부격차를 확대 재생산하여 양극화를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조선에듀에서 오푸름 기자는 일명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영어학원이 서울에 총 288곳이 있고, 최대 밀집지역은 강남. 서초로 가장 비싼 곳은 월평균 총학원비가 224만이고 연 단위로 환산하면 약 2692만 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렇듯 상류층에서는 자녀를 사립초. 국제중. 특목고. 서울대 같은 엘리트 학교로 진학하는 트랙이 형성되어 취학 전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초등학교 때는 국제학교에 입학하며, 비싼 사교육을 병행합니다. 이는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 불평등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영어가 사회적 분열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로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친구들과 경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사례에서도, 영어 실력의 격차는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해외 연수와 사교육을 경험한 부유층 학생들은 학교 시험과 수행평가, 대학 입시에서 중산층, 저소득층 학생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이는 대학 졸업 후 회사에서 영어 면접을 볼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부유하지 않은 학생들은 이 격차를 따라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사회 불평등의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영어는 단순히 학문이라기보다 한국 사회에서 특권계층의 상징이 되어 큰 사회적 분열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2. 조기영어교육 열풍의 요인

 '조기영어교육 열풍'의 이면에 있는 주요한 사회 구조적 요인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학벌사회에서 명문대 진학은 지배계층의 재생산을 위한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에 다른 과목보다 투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영어를 어린 나이에 습득해 남들보다 경쟁의 우위에 있으려 하는 것입니다. 2004년 서울대 사회대 입학률은 부유한 서울 강남 8 학군 출신의 학생들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또한 '아버지 학력, 부모의 소득'과 수능성적이 정비례한다는 보고의 연구도 있습니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특정 명문대학을 출신의 엘리트가 좋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학벌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위계층에 있는 부모들은 영어 유치원을 시작으로 사립초, 국제중, 자사고를 거쳐 명문대 진학에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상위권 대학을 독점하게 되고, 사회적 계층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층에게도 영어교육이 계층 이동의 기회이자, 직업지위 상승이동을 성취할 수 있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고 믿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은 필수라고 여기게 됩니다. 둘째, 영어는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가장 격차가 크게 나는 과목으로, 경제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사교육을 더 받을 수 있으며, 경쟁사회에서 경제적 풍요로움은 좋은 학벌을 낳습니다. 20세기 후반 교육에 시장의 자유경쟁원리에 따라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관'이 등장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러한 자유시장원리에 따라 교육시장화는 경쟁력 제고라는 미명하에 큰 제재 없이 도입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률이 높아져 계층 간 불평등이 확대되었습니다. 구매능력에 따라 자본이 풍부한 엄마들은 사교육을 통한 고액의 원어민 과외, 영어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들은 학습지, 영상매체, 홈스쿨링을 통해 교육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소득의 양극화로 인한 사교육 투자 비율의 차이는 취학 전 아동에게까지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 주지 못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이 확실합니다. 부와 학벌은 자연스럽게 맞물려 돈이 학벌을 낳고 다시 학벌이 돈을 낳는 권력의 세습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어 습득 장치는 유아기에 가장 발달하기 때문에 영어교육을 일찍 시작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 제공자들은 어린 연령일수록 특수한 외국어의 음도 감지할 수 있고, 음과 음의 구별도 쉽게 할 수 있어 영어 성취도가 높다고 사교육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들도 모국어처럼 자연스러운 영어를 하려면 어린 시절 습득해야 효과적이라고 여깁니다. 

 

3. 영어교육 나아가야 할 방향

경제적 불평등이 영어 실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단순히 남들이 일찍부터 영어교육을 시작하니 경쟁사회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으로 명확한 목적 없이 영어교육을 지향하고 있었던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총체적인 관점에서 그 이면에 있는 관념들을 필링(peeling)해 들여다보면서 영어교육을 바라보아야 우리 자녀와 내가 처한 상황을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전체 속에 부분으로 두어 문제를 구별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영어교육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유아기는 언어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성, 인지, 신체 발달 등 제반 발달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결정적 시기임으로 단지 영어실력의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유아의 전인적 발달을 위해 다양한 영역과 영어교육이 조화롭게 실천되도록 해야 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 없이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유아기 시절의 영어 교육의 접근법은 놀이 기반이 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논쟁이 되고 있는 '사립초'의 진학기회는 높은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부유층에게만 교육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교육의 ‘보장적 평등’을 위반하고, 일반 초등학교에 비해 수준 높은 교육환경과 교육내용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조건 평등’을 위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은 중산층의 몰락을 만들어 사회 통합을 저해하며 국가경제에도 큰 위기를 가져올 것입니다. 교육의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가차원의 공교육에서는 현실적 대안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교육의 계층 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문제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공교육을 통한 조기영어교육의 확대를 통해 가정배경의 영향력을 줄여야 하며, 저소득층에 대해 선별지원을 하고, 아울러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결핍을 보완할 방과 후 학교의 공공적 장치를 확립하는 등의 공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내가 어느 정도 경제 수준에 있고 그 수준에 적합하게 어떤 교육방식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주체적으로 선택할 줄 아는 학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 실천을 위해서는, 먼저 어린 자녀에게 영어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적 기저에 대해 주목해야 합니다. 명문대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어떻게 사회 권력이 세습되고 있는지 큰 테두리 안에서 살펴보고, 사회에 의해 조장되기보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경제 수준에 적합하게 효과적으로 영어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한국에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영어조기 교육은 회피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과정입니다. 학벌에 이은 직업지위가 사교육 구매능력에 따라 승부가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자녀 교육문제에 대해 부모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공교육이 공정한 기회 속에서 능력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교육평등이 이루어지도록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고 진지한 고민을 이어나가길 바랍니다.